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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최윤정_욕망에 휩쓸리는 시대상 그리다
_강현석 기자(일요시사)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39985 [754]

[일요시사=사회팀] 위계질서가 뚜렷한 신분사회. 조선시대의 명인 신윤복은 암울한 시대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의 그림들이 변치 않는 생명력을 갖는 건 한 시대의 단면을 들춰냈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했지만 아직도 작가의 역할은 시대상을 그려내는 것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최윤정 작가의 그림은 비장하지 않아 더욱 날카롭다.

TV드라마에 나온 명품백은 방송 직후 완판된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들고 있는 할리우드 파파라치컷은 커피 매출 신장에 기여한다. 야구가 유행이면 야구 유니폼이 불티난 듯 팔리고, 등산이 유행이면 멀쩡한 산 밑에 등산용품 매장이 들어선다. 사람들은 대체 무엇에 홀린 것일까. 서양화가 최윤정 작가는 사람들이 '안경'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 작가가 주목한 안경의 실체는 바로 '프레임'이다.

'안경'쓴 사람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파악할 때 눈을 이용합니다. 눈을 통해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대개 만들어진 거예요. 이런 가공의 이미지를 만든 게 바로 미디어고요. 어디까지나 가공이지만 사람들은 '보이는 이미지'가 진짜라고 믿죠. 그만큼 미디어의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고….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축적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갖게 되죠. 이게 프레임입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한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아마 늑대소년이라면 모를까(웃음)."

최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안경을 쓰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프레임이 씌워진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중은 교육을 통해 또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프레임을 강화시킨다. 최 작가는 사람들이 특정 프레임을 갖는 것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종교)과 신분으로부터 해방된 현대 사회의 새로운 굴레는 다분히 억압적이다.

"전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영역이 갈수록 줄어들 거라고 봐요. 시스템이 사람보다 앞서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죠. 가령 미디어는 내가 배가 고파서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 전에 무엇인가를 당신이 먹어야 한다는 욕망을 불어 넣잖아요. 일상 대화에서도 저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다들 어디에선가 본 얘기를 하고 있단 말이죠. 자신의 취향이 없고, 사회가 부추기는 욕망에 휩쓸리기만 하는 그런 시대상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최 작가의 그림은 군더더기가 없다. 작품의 구도와 색상, 질감까지 꽉 짜인 틀 안에서 완결된 메시지를 갖는다.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한없이 낯선 그의 그림들은 미학에서 말하는 '낯설게 하기'의 형식을 차용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스타벅스나 코카콜라와 같은 이미지가 그의 작품 안에선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안경'소재 작품 발표
매스미디어 풍자·비판

"사람들은 미술품하면 '행복한 눈물'만 떠올려요. 그건 정말 0.1%의 세계인데 그것이 진실인 양 왜곡된 정보를 전파하는 거죠. 어쩌면 너무 사회가 빠르게 변하다보니 심연을 들여다 볼 그런 여유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가령 결혼을 주제로 한 제 그림이 있는데 그림 안에 interest를 집어넣었어요. 보통 흥미란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자 혹은 이해관계란 뜻도 있잖아요. 이런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재밌어요."

최 작가의 작품은 주제부터 스타일까지 굉장히 독특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최 작가를 흉내 낸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도 있지만 최 작가는 "내 생각을 표현하려면 그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컬러, 구도, 장치는 물론이고 인물의 표정과 피부 등 모든 것이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난다고 봐요. 저도 첫 전시를 열었을 때는 안경을 쓴 인물의 얼굴로만 그렸다가 신체를 집어넣고, 비율에도 조금씩 차이를 주고…. 그렇게 그림이 변하는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직업보다 화가란 직업의 장점은 내가 원하는 구성으로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거죠. 구성 안에 내가 담고 싶은 메시지를 넣을 수도 있고요."

최 작가는 "시각미술의 특징은 한 눈에 보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 앞에서 직접 몇 가지 그림을 그려 보이며 '시각심리'에 대한 설명을 폈다.

주제부터 스타일까지 독특
구도·색상·질감 완벽 조화

"개인전을 열면 간간히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그림을 중간에 집어넣어요. 이건 의도된 기획이죠. 단편적으로 봤을 때는 독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던 텍스트도 다른 텍스트와 결합하면 또 다른 이미지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불필요한 장치들을 빼내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독자들이 제가 의도한 것을 그대로 생각하길 원치는 않아요. 저는 즐거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 작업도 항상 즐겁게 하는 편이고요. 평론가처럼 해석하면서 그림을 보는 사람이 필요하고, 즐겁게 그림을 즐기는 사람도 필요해요. 모든 사람이 너무 똑같은 건 재미없잖아요?"

낯설지 않은 낯선

미술교육을 전공한 최 작가의 그림은 다양한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드문드문 지식인의 냉소도 엿보인다. 최 작가는 "안경을 벗고 살면 과연 좋은 것일까"라며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전시장 한편에는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가녀린 손이 붉게 물든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미래의 인류를 기다리는 건 가공된 신화만 남겨진 디스토피아일까.